같은 날, 이름도 비슷한 세계경제계의 두 거물의 미국, 나아가 세계 경제에 대한 엇갈린 전망이 언론에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한 사람은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서 닥터 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루빈이다.
루비니 vs 루빈, 두 거장의 엇갈린 세계 경제 전망
루비니 교수는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2년 내에 미국의 재정위기,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유럽의 채무 재조정, 일본의 스태그네이션 등이 결합해,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 닥쳐 글로벌 경제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1/3이상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Bloomberg, 20011.06.13). 반면, 이데일리 주최 세계전략포럼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 중인 로버트 루빈은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으므로 더블딥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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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왼쪽),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부 장관 |
| 예측이란 것이 사후적으로만 검증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몇 가지 경제지표를 점검함으로써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로버트 루빈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겠다. 그를 소개하는 우리나라 언론의 문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축은행사태, 그리고 그와 맞물려 있는 부정한 금융 감독체계의 문제와 오버랩 되면서, 일명 ‘썩소’를 머금게 했기 때문이다. 주최기관의 홍보성 멘트이겠지만, “월가의 신화”, “가장 성공적인 미국의 역대 재무부 장관”, 모 은행장의 말을 인용해 “루빈은 우리의 롤 모델”이란 제목으로 그의 행보를 전했다. 루빈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면, 그런 소리를 그렇게 쉽게 하진 못할 것이다.
우리가 IMF위기를 겪었던 1997-8년 시기에 미국의 재무부 장관이 바로 로버트 루빈이다. 알다시피, 그 당시 우리는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굴욕적으로 IMF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했어야 했다. 이제는 IMF조차도 그들이 처방전이랍시고 강제했던 긴축정책과 높은 이자율 정책이 우리나라의 위기를 더 심화시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 당시 미 FRB의 그린스펀 의장과 함께 IMF에게 이른바 "충격요법 Shock Therapy"를 처방하라고 주문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재무부 장관 루빈이었다.
루빈, 금융계-미 행정부의 밀착 '회전문 인사' 전형 …금융공황이 열매
그는 또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시티그룹의 수석 자문 위원이자 회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시티그룹은 그 당시 미국의 상업은행 중에서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금융지주회사였다. 시티그룹의 피해는 자업자득이었다. 시티그룹이 전 방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멸종직전의 공룡이 되어버린 것은 1930년대 이래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영역을 구분했던 글라스-스테갈 법안을 폐지했기에 가능했는데, 이것을 폐지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 역시 그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루빈이었다. 뿐만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 때 파생상품시장의 장외거래에 대한 감독권을 파생상품거래위원회에 부여하려던 움직임을 저지한 것도 그린스펀과 루빈이었다.
저축은행사태와 금융 감독체계의 부정부패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런 사람에게 미래 경제 전략을 자문을 받겠다고 구름처럼 모여든 재계의 인사들과 관료들을 보면서 좀 걱정이 된다. 루빈은 금융계와 미국 행정부의 밀착의 구조적 메커니즘인 ‘회전문’ 인사 관행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오랜 기간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가 클린턴 시절 재무부 장관이 되었고, 퇴임 후 곧바로 시티그룹을 위해 일했다.
금융 감독을 책임져야할 집단과 그 대상이 되는 집단이 회전문처럼 빙빙 돌며 뒤섞인 결과가 바로 2008년의 세계적 금융공황이다. 규모는 작지만 작금의 한국의 저축은행사태도 같은 문제에서 기인했다. 반성은커녕 그를 “롤 모델”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경제를 계속 맡겨놔도 되는지 의문이다. 금융안정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혁의 취지를 가지고 있는 G20정상회의를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회로만 생각했던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제도개혁을 통해 금융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매일경제신문에 따르면(2011.06.14), 현대경제연구원과 가계부채위험지수(HRI)를 공동 개발했는데, 올 연말까지 금리가 3.5%로 인상되고, 경제성장률이 4.3%를 이루며, 집값은 현 수준으로 안정된다고 가정하면, HRI가 156까지 올라 2003년 카드사태 당시보다 2배 이상의 위험도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그림 참조). 만약 연말 금리가 4퍼센트로 오르고, 집값이 3퍼센트 정도 하락하면, HRI는 166.5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루비니 교수의 예언대로 또 다시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할지의 여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루비니 교수가 지적한 4가지 불안정 요소, 즉, 미국의 재정위기,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유럽의 채무 재조정, 일본의 스태그네이션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경제는 현재 급격하게 불황으로 빠져들고 있진 않지만,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위의 차트는 미국의 1) 분기별 경제성장률, 2) 다우존스 주가지수, 3) 실업률, 4) S&P Case-Shiller 주택가격지수를 나타낸 것이다. 실질 GDP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 3.1퍼센트에서 올 1분기 1.8%로 둔화되었다. 이것 자체로 2011년 경제성장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향후 경기 판단의 근거로 사용되는 선행지수가 하락으로 전환되어 앞으로도 경기가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5월의 ISM제조업지수가 전달에 비해 11.4퍼센트나 급락하였고, 산업생산지수도 계속 정체되고 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심각한 것은 고용상태이다. 2011년 5월 현재의 실업률이 9.1퍼센트로 바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시장은 이미 더블딥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2010년에 잠시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가 싶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 현재는 2007년 1월에 비해 31% 빠져있는 상태다. 또한, 기존주택판매 추이와 신규주택 건설 모두 계속해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증권시장만이 2007년 1월의 수준을 회복했을 뿐이다. 이것도 최근 미국과 유럽의 재정문제 심화로 인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양적완화정책 등 인위적 수혈뒤 성장동력 못 살려내고 다시 고전
2010년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2008년 금융공황의 충격을 딛고 그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세계경제 전체의 평균 GDP성장률이 2009년 마이너스 0.6퍼센트에서 올해 4.8퍼센트로 급상승 했다. 2009년 마이너스 3.2퍼센트라는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공황의 진원지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도 평균 2.7퍼센트 정도의 양호한 GDP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세가 주로 세계 각국의 대규모 재정투입에 의존한 것이었기 때문에 향후 그런 수준의 추세 유지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을 예를 들면, 이른바 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통해 총 2조 4천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증가시켰다. 이런 대규모 자금투입으로 금융시장을 되살리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경제 자체의 성장 동력을 살려내지는 못 했다.
문제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재정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대규모 재정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법으로 정해진 그 상한선인 14조 2,940억 달러에 근접해 있다. 미국 의회가 상한선을 높여주는 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다면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형식적이나마 디폴트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상한선이 높아진다고 해도 국가부채를 늘려 경기부양을 할 수 있는 여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민간부문의 희망적인 투자전망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상황은 더 심각하다. 가뜩이나 오랜 불황을 겪어 온 일본이 지진해일 피해를 당하면서,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로 환산하여 -3.7%를 기록했다. 게다가 일본의 국가부채는 이미 GDP대비 200%가 넘는 수준이다. 아무리 일본의 경제적 저력이 강해도 계속해서 국가의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기회복을 도모하긴 어려운 위치에 도달해 있다. 유로 존도 이보다 좋은 상황에 있지 않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최하위 등급인 CCC로 강등되는 등 이른바 PIGS의 재정 문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루빈보다는 루비니의 경제전망이 더 근거가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전기전자와 자동차 부문의 수출 호조로 매월 무역흑자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지만, 그저 뒷짐 지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풀린 달러가 대거 유입되며 주가를 올려놓았지만, 올 들어 6월 14일까지 총 2조원 정도의 자금이 주식시장을 빠져나갔다. 루비니의 말을 인용하자면, 5월 이후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3.3조 달러나 줄어들었다. 매일매일 주식지수는 등락을 거듭하지만, 증권시장에서의 중장기 전망이 이미 부정적으로 돌아섰다고 판단된다.
위기가 진짜 올지 안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저축은행사태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지 말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20정상회의에서 제기되었던 금융안정성 강화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우리나라의 금융체제 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