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신작로 먼발치 잘 익어 번들거리던 태양,
홍시 빛 여물어 투명해지더니 먹빛 어스름 속에 자취를 감추고
다다른 시간은 하루 끝에서 또 다른 하루를 재촉하니
서쪽 하늘 끝으로 새카맣게 번지던 기억
세인들이 말하던 주마등처럼 스치던 지난날
실루엣으로 어둠속에서 일렁이고
건물 사이 사이에서 기어나온 밤이 시작되면
알수없는 감정이 야무지게 뿌리를 내린다
아득한 기억마저 먼길을 돌아 나와 어슬렁거리고
투덜거릴 새도 없이 냉정하게 돌아서던 말없는 이별
무엇인지 유추할새도 없이 가버린 시간
그저 스치는 역마다 그려지는 그리운 얼굴들
눈시울 적시는 장문의 문자들
해맑은 한명 한명의 미소가 떠오르면
차가움속에서 뜨겁게 복받치는 밤거리
차창에서 슬쩍 슬쩍 곁눈질하며 바라보는 낯선 모습
상경하던 애띤 그는 어딜가고, 주름진 세월 중년이더라
매일 매일 평범했던 이길에 의미를 부여하니 휑한 감정만 깊게 뿌리 내리고
텅비어버린 마음, 낯선 시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돋아나는 상념에 뿌리 없는 결핍만 자라겠지
오랜세월 외투를 새로운 외투로 갈아 입는다고 좋으랴
당분간은 때때로 퉁명스레 날아 온 희미한 기억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한숨만 길어지겠지
허기진 맘 한줌씩 한줌씩 슬며시 내려 놓으면서 달래야지
새로운 날로 덮어 가야겠지
지금은 공허함에 맘섶이 흥건하더라도 그냥 둬야지
내일이 오면 현실임을 다시 자각할테니 말이다
아...낯설음에 겨울 밤이 더욱 차갑게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