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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매매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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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매매(시스템 트레이딩, 기계매매)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미국에선 1970년대에 시작됐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나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파산한 롱텀캐피탈도 알고리즘 매매로 떴다가 무너진 케이스다.

알고리즘 매매는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매를 불렀던 주범이기도 하다. 증시가 급락하며 하방을 한번 터치하면, 이 매물이 또 투매를 불렀다. 수많은 퀀트 펀드가 이때 망가졌다.

간간이 ‘폭망’의 역사가 재연되고 있지만, 전체 거래에서 알고리즘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2006년만 해도 30% 선이었으나 2009년엔 75%를 넘어섰다는 추정도 있다(출처 : 문병로 서울대 교수의 저서 ‘메트릭 스튜디오’). 미국의 경우 현재는 9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증시 폭락도 알고리즘 매매 때문이었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 전까지 1.2%의 하락세였던 다우지수가 불과 10분 동안 3.5% 이상 추가 급락했다”면서 “오후 3시는 정확히 VIX지수(공포지수)가 30을 상회하는 시점이었는데, 이를 보면 급락의 배경은 사람이 아닌 기계였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VIX는 17.3에서 37.3으로 115% 급등했다. 30에 매도 주문을 넣게끔 설정된 펀드들에서 매물이 출회됐다는 설명이다. 이 매물은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출회됐다. 미국은 3조달러가 넘는 ETF 대부분이 알고리즘 방식으로 운용된다고 한다. 한 펀드매니저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매매 주문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대응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알고리즘 매매가 더 우려되는 것은, 알고리즘 매매를 기반으로 하는 패시브 펀드(인덱스펀드 등) 규모가 최근 수년간 대폭 커졌다는 점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수를 추종하는 형태의 펀드, 그리고 ETF가 인기를 끌었다. 펀드매니저의 개인 역량이 중요한 액티브 펀드는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였다. 상승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았던 패시브 펀드는, 그러나 하락장에선 하락의 주범으로 반역을 꾀하려 하고 있다.

이제는 기계와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기계와 기계의 전쟁에 인간은 도망 다니기 바쁜 형국이다.

미국 증시 투매가 과도했다는 진단이 잇따랐기 때문인지 국내 증시는 6일 장 막판으로 갈수록 낙폭을 줄였다. 또 마이크론이 2분기 실적 예상치를 상향 조정한 것이 국내 대표주인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의 투자 심리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비교적 선방한 수준에서 폭락이 멎었다.

일단 우리나라 증시의 낙폭 축소로 시작된 ‘불안감 완화’가 미국 시장으로까지 이어졌다. 밤사이 미국은 다소 출렁이긴 했으나 2%대 반등에 성공했다. 오늘(7일) 우리나라 증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계 싸움에 인간 등 터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안재만 기자 hoonpa@chosunbiz.com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