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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리인상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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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세에 새 정부 임금 인상 정책 대응 필요
‘갭 투자’ 성행…대출 미시 규제 효과 떨어져
美 기준금리 인상으로 우호적 여건 조성



한국은행이 향후 기준 금리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마이너스인 연 1.25% 기준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은은 “성장 경로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당장 인상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4분기 이후 ‘금리 정상화’에 나설 가능성은 높아졌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이유는 ▲경기 회복세가 빠르게 진행해 초저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등 새 정부의 노동친화적 정책이 예상보다 임금을 빠르게 끌어올려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고 ▲마이너스 실질 금리가 계속될 경우 가계부채에 대한 미시 규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장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금융 시장에 미칠 충격이 줄었다. 금리 인상의 효능은 커졌지만 부작용은 줄어든 상황이다.

◆ “금리 인상 깜빡이, 언제 켤 지가 가장 고민”




이주열 한은 총재는 12일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창립 제67주년 기념행사에서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에는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면밀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경기 회복세에 따라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재는 기념행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긴축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해석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경제 상황이 개선될 경우 현재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윤면식 부총재보는 “5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기자회견 내용보다 반걸음 정도 더 나아간 것”이라며 “미국 기준금리 인상, 보유 채권 축소 등을 고려한 발언이다”고 설명했다. 윤 부총재보는 “성장 불확실성이 크고 물가상승 압력이 없는 상황이라 당분간 완화기조를 유지하자는 게 중론”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의 발언은 뚜렷한 경기 회복을 가정한 ‘조건부 발언’이라는 얘기다.

사실 한은의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무엇보다 임금이 내수 서비스 등의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5월 기자회견에서 하반기에 명목임금이 다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 호조에 따라 기업 수익성이 개선되고 경기 회복세가 확산되면 노동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또 이 총재는 “정부가 고용친화적인 정책을 펼 것임을 감안하면 명목임금 상승세가 빨라질 것으로 본다”고 두 번째 근거를 댔다. 현재 명목임금 상승률은 서비스업의 경우 연 2%대 정도로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실질 상승률은 0%대에 머물러있다. 경기 회복에도 내수 수요 증가가 더디고, 물가상승률이 2%를 넘지 못하는 이유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끌어올릴 경우 내수 서비스 부문에서 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경제회복세가 훨씬 빠른 상황에서 물가가 뛰게 되면 통화정책 기조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금리 인상 필요성이 가시화될 경우 ‘깜빡이’를 오랫동안 켤 수 없다. “정책 신뢰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신호를 보내느냐 보내지 않느냐가 아니라 언제 보내느냐가 최대 고민거리”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 기껏 상승세를 탄 경기에 찬 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갭 투자’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물가 상승률은 가계 부채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면서 4월 실질 기준금리(명목 기준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차감해 구한 금리)는 -0.65%로 떨어졌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전년 대비 0.9%포인트 뛴 1.8%로 전망한다.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경우 현 수준의 마이너스 기준금리가 유지되는 셈이다. 한은이 실질 기준금리를 장기간 마이너스 상태로 놓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9년만이다. 게다가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 금리는 연 1.46%(신규 취급액 기준)인데, 실질 금리 수준은 0.21%에 불과하다. 코픽스는 지난해 6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신규 예금 금리가 계속 낮아지면서 사상 최저 수준을 경신하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실질 금리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금의 차액(差額)을 투자금으로 아파트를 사들이는 ‘갭(gap) 투자’는 주택 가격 상승 기대와 싼 대출 금리가 맞물려 발생한 현상이다. 한 한은 고위 관계자는 갭 투자에 대해 “차주(借主) 신용을 고려치 않고 주택 담보 가치만 보고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준다는 게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과 닮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게다가 대출 비용(금리)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기준 강화 등 은행 문 턱을 높게 만드는 미시 규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미시 규제로 특정 형태 대출을 어렵게 만들 경우 약간의 가산 금리를 감내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대출을 받는 게 성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비은행예금취급기관(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크게 늘었던 상황이 확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은 고위 관계자는 “통화정책 등 거시건전성 정책과 DTI·LTV 등 미시 규제가 모순된 것은 아니다”며 “미시 규제를 쓰다가 안되면 금리 인상 등을 통해 대응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시장 추종형’ 금리 인상 시나리오 유력


한은과 경제학계에서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경우 물가는 0.05%포인트, GDP(국내총생산)는 0.03%포인트 정도 하락한다고 보고 있다.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신호’만 줄 수 있다면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면서도 경제에 충격을 덜 줄 수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한은의 향후 ‘금리 정상화’ 행보에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한다. 한은 기준금리는 단기 금리에, 미국 국채 금리는 10년 이상 장기 금리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6월과 9~12월 각각 한 차례씩 총 0.5%, 내년에 추가로 0.75%포인트 정도 올릴 경우 국내 채권 시장에서 10년 이상 국고채 금리도 그만큼 뛰게 된다. 이렇게 장기 금리가 올라간 상황에서 단기 금리를 인상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2016년 9월 말 0.093%포인트까지 좁혀진 국고채 10년물과 1년물의 금리차(스프레드)는 5월 중순 0.83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같은 기간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0.908%포인트, 1년물 금리는 0.166%포인트 상승했다. “채권 시장에서 장기 금리가 충분히 오르고, 단기 금리도 일정 정도 상승했을 때 이를 추종해 기준금리를 소폭 올린다면 금융 시장을 냉각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한은 내부의 시각이다




조귀동 기자 cao@chosunbiz.com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