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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1200원대 수출계약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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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재경팀은 요즘 비상 상황이다. 작년 연말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서 삼성전자 해외 법인과 현지 공장이 진출한 국가들의 환율 상황을 실시간 체크하는 '국가별 리스크 모니터링' 시스템에 연일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해외 비중이 90%가 넘는 삼성전자의 경우, 환율이 회사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가별 모니터링 담당자는 연일 전쟁을 치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작년 연말 1200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최근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락하면서 기업마다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해졌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100원 떨어질 경우 삼성전자 7000억원, 현대·기아차 3000억원 등 막대한 규모의 분기 환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롤러코스터 환율' 비상 걸린 기업들

현대자동차는 지난 1일 서울 본사와 미국·중국 등 해외 법인 간에 환율 관련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채널을 구축했다. 현재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환율 마지노선은 '1달러=1050원'. 이 밑으로 떨어지면 국내에서 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도 오히려 손해가 난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우리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며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당분간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를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력 수출 업종인 전자·정유·철강 등도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금 같은 환율 하락세가 계속된다면 매출 감소뿐 아니라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4분기 최대 실적을 냈던 부품·소재 기업들은 강(强)한 달러의 수혜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혼돈에 빠졌다.



반도체 제품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하는 SK하이닉스는 '환관리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는 등 최근 환율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제품의 95% 이상을 수출하는 우리로선 환차손을 최소화하는 것은 제품을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로 장비 부품 대금을 결제하는 식으로 환차손을 줄이고, 금융기관과 소통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환율 급변으로 인한 현재 상황을 '주의' 단계로 규정했다. 이 회사는 작년부터 환율 상황을 안정―주의―경계―위기 4단계로 분류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미국 경제 되살리기 정책만 보면 '강달러'가 되는 게 정상인데, 대통령이 억지로 누르는 모양새"라며 "같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돼"

대기업에 비해 마진율이 높지 않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환율이 떨어지면 이익 대부분을 환차손으로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작년 연말 원·달러 환율이 높을 때 제품을 수출했던 중소기업들은 최근 대금 결제 시점을 맞아 환율이 떨어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서 반도체 소자를 생산해 전량 미국과 유럽 지역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 대표 이모(56)씨는 요즘 출근하면 환율 그래프만 들여다보고 있다. 이씨는 "요동치는 환율 때문에 요즘 갈피를 못 잡겠다"며 "원·달러 환율 1200원일 때 수출했던 제품 대금 결제가 최근 이뤄졌는데, 환율이 떨어져 수억원을 허공에 날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향후 해외 시장에서 약(弱)달러의 수혜를 보는 북미 기업들과 경쟁할 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중소기업연구원 김세종 원장은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 더 문제"라며 "약달러가 계속되는 상황에선 해외 시장에서 우리 중소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거래처를 잃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도 환율이 지금처럼 내려갈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기업들의 미래 예측이 불확실해진 것 자체가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라며 "지금 같은 환율 하락세가 계속되면 기업마다 올해 영업 전망을 다시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흔 기자 dhshin@chosun.com/송원형 기자 /강동철 기자 Copyrights ⓒ ChosunBiz.com